=신 유라시아 시대의 개막
21세기 접어들어 유라시아 대륙 한복판에서 거대한 지경학적 ‘용틀임’이 포착된다.
냉전 종식이후 북방의 대륙세력들이 급속한 고도 경제성장을 구가하면서 자국의 항구적인 번영을 촉진하기 위한 전략적 경쟁이 한창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일대일로’, 러시아의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및 ‘신동방정책’, 카자흐스탄의 ‘누를리 졸(Nurly Zhol:광명의 길)’, 몽골의 ‘초원 길 이니셔티브’ 등이 대표적인 사례들일 것이다.

이는 북방의 주요 국가들이 꿈틀거리는 대륙의 경제적 역동성에 주목해 새로운 물류 루트를 개발하고, 물적 자원의 안정적 확보와 공급을 통해 지속적인 성장을 담보하기 위한 일종의 국가발전 전략이다. 한국도 1980년대 말 이래, 북방외교 및 유사(類似) 북방정책을 펼치면서 유라시아 대륙으로의 진출을 꾀하고 있다.

한반도 신경제구상의 확장으로서 문재인 정부가 천명한 ‘신 북방정책’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신 북방정책은 다양한 수준의 구현 목표를 담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반신불수(半身不隨) 상태에 있는 한반도의 물리적 환경의 원상복구를 우선적으로 추구한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남북 간 ‘H경제벨트’를 형성하는 가운데 물리적으로 단절된 북방지역과 물류와 교통로, 에너지 네트워크를 연결하고 확대하는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유라시아 물류 허브 ‘청사진’으로서 신 북방정책
신 북방정책은 동강난 남북한의 물류 통로를 다시 이어서 한반도가 지닌 천혜의 지리적 조건을 최적화, 극대화하고 이를 통해 21세기 한국의 새로운 국가적 웅비를 모색하기 위한 지경학적 청사진이라 할 수 있다. 요컨대 대륙과 해양을 잇는 반도적 ‘랜드브리지’(land bridge)로서의 지리적 이점을 적극 활용하고, 여기에 한국의 선진화된 물류 시스템을 적용하여 한반도를 유라시아 물류 허브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국가발전 전략인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그런 구상은 북방경제협력위원회가 제시한 ‘나인 브릿지’(9-Bridge) 전략에 잘 반영되어 있다. 9-Bridge 전략 가운데 하나인 TSR-TKR 연결 사업은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의 이용 및 운송의 활성화를 통해 시간과 물류비를 절감하고, 그럼으로써 교역을 촉진하고 한국 상품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또 나인 브릿지 전략에는 새롭게 열리는 북극항로(NSR: Northern Sea Route)의 상업적 이용 및 활성화 그리고 북극 시장의 개척도 포함된다. 냉전 종식 이후 중국, 러시아, 인도, 몽골, 카자흐스탄 등 소위 북방 세력이 신흥 경제강국으로 부상하고 세계무역과 투자발전의 기관차 역할을 하면서 유라시아 대륙 내부에서 무역과 에너지 및 교통 인프라를 중심으로 한 협력과 통합이 거역할 수 없는 큰 흐름으로 작용하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이에 따라 유라시아 대륙을 사통팔달로 연결하는 복합물류 네트워크를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구축하기 위한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하고, 그 결과 글로벌 물류체계 및 물류시장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CJ 대한통운, SLK 국보, 팬오션(PANOCEAN) 등 한국의 대표 물류 기업들도 유라시아 물류 시장에서의 우위 확보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전개 중이다.
=왜 시베리아 내륙 수운인가?
새로운 북방 물류시장 개척에 있어서 한국 물류기업들의 문제점은 지나치게 ‘경로
의존적’이라는 점이다. 말하자면 한국의 북방 물류는 ‘철도’ 의존성이 매우 강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TSR은 유라시아 대륙의 동과 서를 잇는 횡(橫) 방향의 물류 운송만 가능하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더욱이 철도 운송은 화물의 크기와 양에서도 제약을 받는데, 현재 대중량 및 초대형 화물 운송을 위한 350t 이상의 특수 화차는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한 실정이다.a) 새롭게 열리는 북극항로(NSR)의 이용에도 제약이 따른다.

동쪽 베링 해협과 서쪽의 무르만스크를 잇는 북극항로의 이용 가능 기간은 연중 3~4개월에 불과하다. 그리고 기상 조건에 따라 빙하 상태가 변하기 때문에 그 정시성을 담보하기 어렵다.b) 빙하가 완전히 녹을 것으로 예상되는 2030년까지는 쇄빙선이 갖추어져야만 운항이 가능한데, 쇄빙선의 높은 이용료와 공급 부족 등으로 북극항로 이용의 경제성도 보장되지 않고 있다. TSR과 NSR 이용의 제약성 속에서 한국이 유라시아 물류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물류 루트를 개척하고 효율적인 물류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방향의 물류 루트들을 다양한 운송 수단들을 동원해 유기적인 조합으로 연결시키는 새로운 시도가 필요한데, 그런 측면에서 기존의 TSR/NSR 이외에 유라시아 대륙의 남북을 트럭킹, 철도, 하운(河運) 등으로 이어주는 복합 교통·물류 루트의 개척 및 활용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최근 북방의 물류 루트에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것이, 북극으로 흘러들어가는 시베리아 3대 강, 즉 ‘오비 강’, ‘예니세이 강’, ‘레나 강’을 이용한 내륙 수운(水運)체계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두개의 횡축(橫軸) 방향 물류 루트인 TSR과 NSR 사이를 종축(縱軸)으로 이어주는 시베리아 내륙수운을 복합적으로 연계하는 물류 루트가 경쟁력 있는 새로운 물류 루트로 부상하고 있다.c)

북극항로가 정시성과 경제성을 확보하고 상용화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우선 북극 항만의 배후지가 되는 시베리아의 수운과 유라시아 대륙횡단 철도망을 유기적으로 활용하는 내륙 복합 운송 물류체계를 독자적으로 구축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시베리아 내륙 수운 활성화 요인
시베리아 철도가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고, 북극항로에 대한 투자 개발이 점차 활
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시점에서 러시아에서는 내륙 수로의 활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016년 8월 15일, 볼고그라드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내륙수운의 활성화를 힘주어 강조했다. 도로와 내륙수운의 물동량이 1990년대까지는 비슷했으나, 최근에 이르러 그 차이가 4배에 이른 것을 언급하며, 내륙수운 활용의 감소는 수익성이 없는 비효율적인 운송루트를 증가시켜 경제적 손실을 가져 온다고 지적했다.d)

21세기 접어들어 급격한 과학기술의 발달과 도로 운송, 물류 시스템의 발전으로 내륙 수운은 그 기능과 활용 수준이 오히려 퇴보한 듯 보인다. 하지만 철도나 항공, 도로가 내륙수로의 역할을 완전히 대신 할 수는 없다. 특히 운송수단의 접근이 어려운 시베리아와 극동지방의 농림산물 및 식량, 유용광물 등 무겁고 부피가 큰 중량물들의 운반은 더더욱 그렇다. 시베리아 철도 노선의 운송지체 만연, 도로 화물 운송량의 포화, 대중량 및 초대형 화물 운송의 증가, 지구 온난화에 따른 경지면적의 증대와 북극 방향 하운(河運) 활용기간 확대, 환경오염, 북극권 경제 개발 등의 이유로 시베리아 내륙 수운의 역할과 기능은 점차 그 중요성이 더해지고 있다.

실제로 북극항로의 개발로 북극해와 내륙수로의 연계물류 증가 가능성이 높아지
면서 러시아 내에서도 시베리아 내륙수운의 활성화 움직임이 관찰되고 있다. 러시아 내륙수운 활성화의 동인은 또 있다. 유라시아 내륙 국가 사이에 대외 교역이 늘어나고, 각국의 에너지 개발에 따른 대규모 플랜트 사업이 활발해질수록 유라시아 지역의 시베리아 극동 내륙 수로들을 활용한 물동량은 더욱 늘어나게 될 것이 자명하다.

이에 따라 한국경제의 새로운 블루오션인 유라시아 대륙을 ‘씨줄’과 ‘날줄’로 묶는 효율적인 신규 물류망의 개척은 북방과의 물류 연계성 증대를 통해 유라시아 경제권에서 ‘기회의 창’을 열고자 하는 한국에게 매우 중요하고 절실하다.

4차 산업혁명과 북극항로 시대의 개막으로 물류 혁신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유라시아 대륙을 철도, 도로, 하운, 해운을 통해 종축과 횡축으로 연결시켜 북방의 새로운 물류 지도를 그리고 그 사업 가능성을 진취적으로 검토 및 구현할 때, 유라시아 물류 허브로서 대한민국의 지경학적 위상은 한층 더 제고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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